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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성곡도서관소개 > 성곡선생소개 > 민족기업인의 길

성곡선생 소개introduce

민족 기업인의 길
생애 대부분을 기업인으로 산 성곡선생은 기업을 함에 있어서도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업에 투자했다.
<금성방직주식회사 안양공장 전경>
1938년(26세) 2월 대구상공은행 입사, 1년 여 근무
1939년(27세) 4월 삼공유지합자회사(비누공장) 설립
1948년(36세) 3월 고려화재해상보험 설립
10월 금성방직주식회사 설립
1950년(38세) 6월 한국전쟁으로 금성방직 안양공장 전소
12월 대구 칠성동에 금성염색공장 설립
1953년(41세) 8월 고려화재해상보험 사장 취임
1954년(42세) 12월 UNKRA(국제연합 한국재건단)와 정부의 지원으로 금성방직 재건
1956년(44세) 3월 태평방직, 아주방직 인수
1962년(50세) 5월 쌍용양회공업주식회사 설립
1967년(55세) 10월 금성방직주식회사 매각
12월 쌍용해운주식회사 설립
1968년(56세) 10월 쌍용양회 동해공장 준공
1973년(61세) 9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취임
1974년(62세) 7월 쌍용양회 기업 공개
금성방직주식회사 [金星紡織株式會社]

"우리도 잘 살 수 있는 나무를 심었습니다.
이젠 뿌리가 깊숙이 박혔고 태풍에도 이겨낼 수 있는 열매 맺은 나무로 성장해 갑니다.
온 겨레가 그 나무를 잘 길러 간다면 우리 앞날에도 서광은 비칠 것이다."
- 성곡 선생의 6.8 총선 유세에서 (영남일보, 1967년 6월 2일자) -
<금성방직주식회사 공장내부 모습>
쌍용양회공업(주) [雙龍洋灰工業(株)]

"선생이 36세에 금성방직을 창립한 것은 해방 후 첫 사업으로 국민생활의 필수품 생산이라는 선생의 건전한 기업정신을 증거한 일이며, 그같이 애써 만든 공장이 6.25동란으로 잿더미가 되었지만
선생은 오히려 더 빛나게 재건했다.

선생은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쌍용양회 동해 대단위공장을 설립하여 동양 제일 아니, 세계의 쌍용으로 발전시키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또 쌍용을 더 키우기 위해 정치자금 조달을 배제하고 자기 손수 창설한 금성과 동해전력을 쾌척했던 일은 과연 선생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61세에 대한상공회소 회장의 중임을 띄고 50만 상공인들을 이끌고서 기업의 공익성을 외치면서 가장 먼저 기업공개를 발표함과 아울러 이란과 모로코와 인도네시아와 중남미 여러 국가와 민간
경제협력기구를 만들어 민간외교를 전개한 것은 모두 다 선생의 이상을 실천한 것들이었다."
- [성곡 김성곤선생 신도비명 및 서문] (노산 이은상 지음, 1988년)에서 -
<쌍용양회 동해공장 준공식 (1968.10.31)>/<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동해공장을 둘러보는 성곡선생 (1968.10)>/<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간친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성곡선생 (197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