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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성곡도서관소개 > 성곡선생소개 > 인재육성의 길

성곡선생 소개introduce

인재육성의 길
국민대학교 인수, 인재 육성의 원대한 터전을 닦다. 해방 후 최초의 민족대학이 세워지다
국민대학설립기성회의 국미내학 설립을 보도한 ‘조선일보’(좌), ‘독립신문’(우) 기사 (1946.5.18)/국민대학 개교기념 사진 (보인상업학교, 1947.2)/설립자 해공 신익희/상해 임시정부 국문원 내무차장 시절의 해공 (1919.10, 앞줄왼쪽)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주석 김구, 부주석 김규식 등)은 해방 후 귀국하여 새로운 국가건설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미래지향의 숭고한 이념으로 1946년 9월 1일 해방 후 최초의 사학인 국민대학교를 설립했다.

국민대학의 교사였던 남산의 구 동본원사 (1947)/체신이원양성소 건물/국민대학 신축교사 정문 (1949)/국민대학 전경 (1949)/국민대학 신축교사 낙성식 기념촬영 (1949.9.5)
그러나 임시정부 요인들은 대학설립과 함께 새로운 국가건설이라는 막중한 임무 때문에 대학운영에 오로지 관심을 기울일 수 없었다.
더욱이 6.25 동란 이후 거듭된 재단분규로 학교가 어려움에 처했고, 그로 인해 재단이 튼튼하지 못해 학교 발전에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 기업가, 언론인 그리고 정치인으로 활동하던 성곡 선생은 1959년 10월 재단법인 국민학원을 인수한다.

이로써 본교는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 국민대학교를 인수하던 해 12월 고향의 현풍학원(현풍중고등학교)을 인수하는 등 우수한 인재 발굴과 육영사업에 깊은 관심을 갖고 물심양면에서 전력을 기울였다.
국민대학,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다.
창성동 신축교사 낙성식 (1960)/창성동 신축교사 전경(우), 외부와 내부(좌)
1959년(47세) 10월 재단법인 국민학원 인수, 재단이사장 취임
12월 창성동 캠퍼스 신축 교사 준공
1961년(49세) 10월 창성동 캠퍼스 증축교사 준공
1960년 4월 재단장학금 제도 최초 실시
1962년(50세) 4월 국민 여자초급대학 설립
1965년(53세) 2월 중앙농민학교 인수
1968년(56세) 12월 성곡학술문화재단 설립


증축한 창성동 교사
"내가 국민대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대학(지성)에 대한 나의 끊임없는 동경과 집념 때문이다.
지성 없이 인격이 존재할 수 없고 한 사회가 존립할 수 없다. 그것이 없이 국가가 있을 수 없고 민족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지성이야 말로 참말로 그 사회의 기간이요, 그 국가민족의 바탕이 아닐까. 그 지성을 함양하는 하는 곳이 대학이라는 데서 나의 대학에의 집념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그 집념 때문에 우리 국민대학을 떠맡게 되었던 것이다."
- 성곡 선생, 「국민대학과 나」 국민대학보 1968년 5월 20일자-


1969년(57세) 7월 정릉동 캠퍼스 이전공사 시작
1971년(59세) 9월 정릉동 캠퍼스 이전
국민대한,국민산업학교 신축교사기공식 /  1호관(본부관)준공식 장면 / 2호관(북악관) 기공식 장면
1호관과 건설중인 2호관


"국민대학은 내 생애에 가장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투자라고 생각된다.
이익을 남겨야 하는 자본주의적 의미에서의 투자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인재에의 투자, 국가유위(國家有爲;국가를 위해 큰일을 할 수 있는)의 지성들을 자유로운 사학의 분위기 안에서 길러 내기 위한 투자라는 뜻이다."
- 성곡 선생, 「국민대학과 나」 국민대학보 1968년 5월 20일자-


1975년(63세) 2월 25일 별세
2월 26일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
3월 1일 국민대학교 성곡동산에 안장(1984년 강원도 평창군 이장)
성곡선생의 장례식 장면 / 국민훈장 무궁화장
성곡 선생의 육영(育英)이념
성곡 선생은 대학교육을 통해 민족(民族)주의․산업(産業)주의․문화(文化)주의․인본(人本)주의4가지 육영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다.

민족주의는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 즉 애족(愛族)정신이다. 민족애(民族愛)는 성곡 선생의 기본정신이다.
대학에서 학문과 육영의 목표는 국가와 민족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민족의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주의는 민족기업의 육성과 경영을 통해서 민족과 국가에 이바지 한다는 정신이다.
대학에서 학문과 육영의 목표는 민족 산업과 민족 자본을 진흥시키기 위해 우수한 기술자와 산업인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주의는 민족의 생명력은 그 민족의 문화 속에 깃들어 있다는 이념이다.
민족문화의 육성은 민족의 생명력에 불을 붙이는 일이며, 그를 통해 민족문화는 발전한다.
대학에서 학문과 육영의 목표는 민족문화의 육성과 발전에 이바지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인본주의는 보편적 인간존중의 정신을 표현한 이념이다.
성곡 선생은 인간의 본성 또는 사람이 사람 된 도리로서 지니는 덕성(德性)을 중시하여, 소박(素朴) 성실(誠實) 근면(勤勉) 정직(正直)을 인간의 중요한 덕목(德目)으로 강조했으며, 이를 육영이념의
또 다른 목표로 삼았다.